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전주 김씨 (문단 편집) == 유래 == 시조 시랑 [[김봉모]](金鳳毛)는 [[경주 김씨]] 중시조 [[경순왕]]의 후예로 고려조에서 동북면지병마사·추밀원부사·중서문하시랑평장사·태자태부를 지냈다. 사후 정평공(靖平公) [[시호]]가 내려졌다. [[경주 김씨]]에서 분적하였다. 일설에 따르면 김봉모의 아들 김태서(金台瑞)가 시조라고 한다.[* 그는 [[경순왕]]의 넷째 아들인 대안군 김은열(金殷說)의 9세손이라고 하지만 김은열은 정사에는 기록이 없고 [[조선]] 후기 발견되었다는 묘지석을 바탕으로 그의 존재를 추정할 뿐이며 묘지석 진위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다.] 그러나 김태서(金台瑞) 이전에 부친 김봉모(金鳳毛)가 완산군(完山君)에 봉해졌으니 김태서 이전에도 전주에 연고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. [[1887년]] 간행된 《김씨 분관록》 및 《증보문헌비고》·《조선씨족통보》등의 문헌에도 시조를 시랑(侍郞) 김봉모(金鳳毛)로 한다. 아들 김태서는 [[고려 고종]] 때 문과에 급제해 한림학사부터 [[중추원|추밀원]] 부사 · 상장군 등을 지냈고 문하시랑평장사와 보문각대제학을 역임하였다. [[1254년]] [[경주시]]가 [[몽골군]]의 침입으로 폐허가 되자 가족을 데리고 [[전주]]로 갔고 후에 전주군(全州君)에 추봉되었다. 후손들이 관향을 전주(全州)로 삼았다. 김태서(金台瑞)의 장남 [[김약선]]은 [[최우]]의 사위이자 심복으로 훗날 그의 딸이 [[원종(고려)|원종]]의 1비 [[순경태후|정순왕후]]가 된다. 살아 생전 태자비였으나 사후 [[1262년]] 정순왕후로 추존되었으며 그녀의 아들이 [[1274년]] 드디어 왕위에 오르니 바로 [[충렬왕]]으로 아들이 왕위에 오르자 정순왕후는 태후로 추존되니 시호를 순경태후라 하였다. 김태서의 삼남은 '''[[대몽항쟁]] 당시 맹활약한 무인 [[김경손]]'''이다. 김태서의 묘는 [[전라북도]] [[완주군]] 구이면 원기리의 모악산에 있다. 육관 손석우라는 사람이 [[김일성]]이 [[김일성/사망|사망]]하기 1년 전 '터'라는 책에서 김태서의 묘에 대해서 "이 묘는 천문을 열고, 지축을 깨는 절대권력의 묘자리"라며 김일성의 사망 시기를 예언한 적이 있는데 이 때문에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